이영애李英愛1971년1월31일~장금長今1550년대장금양귀비楊貴妃 이영애李英愛1971년1월31일長今1550년대장금楊貴妃의依疑衣意義醫矣議宜儀擬毅椅倚懿蟻艤錡嶷欹儗劓螘医义冝拟祎蚁议銥鐿18개眼을·를Ether體無關垂直8192分面水平8192分面上에서垂直直角縱切⫽斷水平直角橫切⫽斷45degrees斜傾側直角縱切⫽斷永久作頭死刑處罰할것持續恒久恒續永續終身永遠永劫永久無始無終處無限反復永久兆年永遠兆年永續兆年永劫兆年處罰할것 의녀 장금이 처음 기록에 등장한 것은 중종10년 1515년이다.[1] 이루고자하거나마무리짓고자하는어떤것唟所者을乙를致하下河下夏何賀荷瑕遐霞蝦는隱隐주州洲株主住走注晝朱宙酒周舟柱洲珠奏鑄駐疇週躊誅註인人仁因引印寅忍認隣姻咽麟刃湮鱗吝燐의衣意義依醫矣議宜儀疑誼擬毅椅식食式植識息飾체體切遞滯替逮締涕綴諦剃体軆砌棣 이루고자하거나마무리짓고자하는어떤것唟所者을乙를하下河下夏何賀荷瑕遐霞蝦는隱隐주州洲株主住走注晝朱宙酒周舟柱洲珠奏鑄駐疇週躊誅註인人仁因引印寅忍認隣姻咽麟刃湮鱗吝燐의依疑衣意義醫矣議宜儀擬毅椅倚懿蟻艤錡嶷欹儗劓螘医义冝拟祎蚁议銥鐿18개眼을·를Ether體無關垂直8192分面水平8192分面上에서垂直直角縱切⫽斷水平直角橫切⫽斷45degrees斜傾側直角縱切⫽斷永久作頭死刑處罰할것持續恒久恒續永續終身永遠永劫永久無始無終處無限反復永久兆年永遠兆年永續兆年永劫兆年處罰할것 臺諫啓前事。憲府又曰: “前日戶曹啓請: ‘禪、敎兩宗, 革罷已久, 其位田。’刷充國用, 而敎以勿刷, 今不許度僧, 永絶根株, 則兩宗位田, 宜刷屬公, 而革罷寺刹位田, 竝宜刷之。”傳曰: “大抵人之死生, 豈關醫藥? 然進藥大王前, 失宜者, 論屬書吏, 固有前例。未知於王后, 亦有此例耶? 其考前例以啓。且醫女長今, 護産有功, 當受大賞, 厥終有大故, 故未蒙顯賞。今縱不能行賞, 亦不可決杖, 故命贖杖, 此, 酌其兩端, 而定罪之意也。餘皆不允。”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고 헌부가 또 아뢰기를, “전일 호조(戶曹)에서, 선(禪)·교(敎) 양종(兩宗)을 혁파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그 위전(位田)을 추쇄(推刷)하여 국용에 충당할 것을 아뢰었는데, 추쇄하지 말라고 하교하시었습니다. 지금 도승(度僧)을 허가하지 않아 영구히 그 뿌리를 끊었은즉, 양종의 위전은 의당 추쇄하여 속공(屬公)하고, 혁파한 사찰(寺刹)의 위전도 함께 추쇄하여야 합니다.”하였다. 전교하였다, “대저 사람의 사생이 어찌 의약(醫藥)에 관계되겠는가? 그러나 대왕전에 약을 드려 실수한 자는 논핵하여 서리(書吏)에 속하게 함은 원래 전례가 있었다. 왕후에게도 또한 이런 예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니, 전례를 상고하여 아뢰라. 또 의녀(醫女)인 장금(長今)은 호산(護産)하여 공이 있었으니 당연히 큰 상을 받아야 할 것인데, 마침내는 대고(大故)가 있음으로 해서 아직 드러나게 상을 받지 못하였다. 상은 베풀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형장을 가할 수는 없으므로 명하여 장형(杖刑)을 속바치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 양단(兩端)을 참작하여 죄를 정하는 뜻이다. 나머지는 모두 윤허하지 않는다.” — 중종실록 중종 10년 (1515년) 3월 21일 두 번째 기록은 중종10년 1515년이다.[2] 臺諫啓前事, 又曰: “醫女長今之罪, 又甚於河宗海。産後衣襨改御時, 請止之, 則豈致大故? 刑曹照律, 不用正律, 而又命贖杖, 甚爲未便。” 皆不允。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의녀인 장금(長今)의 죄는 하종해(河宗海)보다도 심합니다. 산후에 의대(衣襨)를 개어(改御)하실 때에 계청하여 중지하였으면 어찌 대고에 이르렀겠습니까? 형조가 조율(照律)5532) 할 때에 정률(正律)을 적용하지 않고 또 명하여 장형을 속바치게 하니 매우 미편합니다.”하였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 중종실록 중종 10년 (1515년) 3월 22일 세 번째 기록은 중종17년 1522년이다.[3] 大妃殿證候向愈, 上賞藥房有差。【提調金詮ㆍ張順孫、承旨趙舜, 馬粧一部、弓一丁、箭一部, 醫員河宗海馬一匹、米太十石, 金順蒙馬一匹, 醫女信非、長今各米太十石, 內官、飯監、別監亦皆有賜。】傳曰: “近日, 久不視事, 不得接群臣, 心甚未安。 然慈殿猶未永差, 姑待數日, 當御經筵。” 대비전(大妃殿)의 증세가 나아지자, 상이 약방(藥房)들에게 차등 있게 상을 주었다.【제조(提調) 김전(金詮)·장순손(張順孫)과 승지 조순(趙舜)에게는 말안장 20부(部)·활 1정(丁)·전죽(箭竹) 1부(部), 의원 하종해(河宗海)에게는 말 한 필과 쌀·콩 각 10석, 김순몽(金順蒙)에게는 말 1필, 의녀 신비(信非)와 장금(長今)에게는 각각 쌀·콩 각 10석씩을 주고, 내관(內官)·반감(飯監)·별감(別監)에게도 모두 하사가 있었다.】 전교하기를,“요사이 오래 일을 보지 않아 군신(群臣)들을 접하지 못하게 되니 마음에 매우 미안하다. 그러나 자전(慈殿)께서 완전히 쾌차하지 못하시니, 아직 2∼3일을 기다렸다가 경연(經筵)에 나아가겠다.”하였다. — 중종실록 중종 17년 (1522년) 9월 5일 네 번째 기록은 중종19년 1524년이다. 이때부터 대장금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니 중종 17~19년 사이 장금이라는 이름 앞에 '대(大)'라는 호칭을 쓴것으로 생각된다.[4] 傳曰: “百工技藝, 皆不可闕, 而勸課節目, 非不詳盡矣。但各司官員, 不致力勸課, 故卒無成效。其中醫術, 尤爲大事, 而不各別勸課焉, 今之粗解其術者, 皆成宗朝所敎養者也。今則其勸課事, 何以爲之? 其問于醫司以啓。且醫女料食, 有全遞兒、有半遞兒。今者, 全遞兒有窠闕, 而不啓其應受之者, 必以自下啓之爲難也。但醫女大長今, 醫術稍優於其類, 故方出入大內, 而看病焉。此全遞兒, 其授長今。” 전교하였다.“백공(百工)의 기예(技藝)는 다 부족하여서는 안되고 권과절목(勸課節目)이 상세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다만 각사(各司)의 관원이 힘을 다하여 권과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성효(成效)가 없다. 그 가운데에서도 의술(醫術)은 더욱 큰일인데 각별히 권과하지 않으니, 지금 그 기술을 조금 아는 자는 다 성종조(成宗朝)에서 가르쳐 기른 자인데, 이제는 그 권과하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사(醫司)에 물어서 아뢰라. 또 의녀(醫女)의 요식(料食)에는 전체아(全遞兒)가 있고 반체아(半遞兒)가 있는데, 요즈음 전체아에 빈 자리가 있어도 그것을 받을 자를 아뢰지 않으니, 아래에서 아뢰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의녀 대장금(大長今)의 의술이 그 무리 중에서 조금 나으므로 바야흐로 대내(大內)에 출입하며 간병(看病)하니, 이 전체아를 장금에게 주라.” — 중종실록 중종 17년 (1522년) 9월 5일 다섯째 기록은 중종28년 1533년이다.[5] 傳曰: “予累月未寧, 今幾差復。 藥房提調及醫員等, 不可不賞。左議政張順孫熟馬一匹, 禮曹判書金安老、前都承旨丁玉亨、常山都正末孫加資,【常山都正獻藥於患腫之初, 易至濃潰, 故亦在賞列。】醫員河宗海加資准職, 同知朴世擧、洪沈加資, 各賜米太六石, 金尙坤加資, 兒馬一匹, 金守良、盧漢明, 掌務官員等, 各兒馬一匹, 醫女大長今、戒今各米太幷十五石、官木緜正布各十匹, 湯藥使令等, 賞賜有差。” 전교하였다.“내가 여러달 병을 앓다가 이제야 거의 회복이 되었다. 약방 제조와 의원들에게 상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좌의정 장순손(張順孫)에게는 숙마(熟馬) 1필(匹)을 내리고 예조 판서 김안로(金安老), 전 도승지 정옥형(丁玉亨), 상산 도정(常山都正) 이말손(李末孫)에게는 가자(加資)하고,【상산 도정이 종기를 처음 앓기 시작한 때 약을 바쳐서 쉽게 곪아 터지게 하였으므로 역시 상을 주도록 하였다.】 의원 하종해(河宗海)는 준직(準職)을 가자하고, 동지 박세거(朴世擧)와 홍침(洪沈)은 가자와 함께 각기 쌀과 콩 6석(石)씩 내리고, 김상곤(金尙坤)은 가자와 함께 아마(兒馬) 1필을 내리고, 김수량(金守良)·노한명(盧漢明)과 장무 관원(掌務官員)은 각기 아마 1필씩을 내리고, 의녀(醫女) 대장금(大長今)과 계금(戒今)에게는 쌀과 콩을 각각 15석씩, 관목면(官木綿)과 정포(正布)를 각기 10필씩 내리고, 탕약 사령 등에게는 각기 차등 있게 상을 내리라.” — 중종실록 중종 28년 (1533년) 2월 11일 여섯째 기록은 중종39년 1544년이다.[6] 傳于政院曰: “予頃者感寒, 得咳嗽證, 久未視事, 故少差而爲經筵, 其日適寒, 前證復發。醫員朴世擧、洪沈及內醫女大長今、銀非等議藥事, 曾已下諭也, 此意言于內醫院提調。且中和【二月初一日。】晝物,【別進御膳】亦可停矣。” 정원에 전교하였다.“내가 접때 감기가 들어 해수증(咳嗽症)을 얻어서 오래 시사(視事)하지 못하였다. 조금 나아서 경연(經筵)을 열었더니, 그날 마침 추워서 전의 증세가 다시 일어났다. 의원(醫員) 박세거(朴世擧)와 홍침(洪沈) 및 내의녀(內醫女) 대장금(大長今)과 은비(銀非) 등에게 약을 의논하라고 이미 하유(下諭)하였거니와, 이 뜻을 내의원 제조에게 이르라. 또 중화(中和)【2월 1일.】의 주물(晝物)【특별히 바치는 어선(御膳).】도 멈추라.” — 중종실록 중종 39년 (1544년) 1월 29일 일곱째 기록은 중종39년 1544년이다.[7] 傳曰: “內醫院提調尹殷輔、鄭順朋, 各賜熟馬一匹; 都承旨李瀣、醫員朴世擧ㆍ洪沈皆加資; 柳之蕃、韓順敬, 各兒馬一匹; 醫女大長今, 賜米、太幷五石; 銀非米、太幷三石; 湯藥使令, 各給官木綿二匹。” 전교하였다.“내의원 제조 윤은보(尹殷輔)와 정순붕(鄭順朋)에게 각각 숙마(熟馬) 1필씩을 하사하고 도승지 이해(李瀣), 의원 박세거(朴世擧)·홍침(洪沈)에게는 모두 가자(加資)하고, 유지번(柳之蕃)·한순경(韓順敬)에게는 아마(兒馬) 각 1필씩, 의녀 대장금(大長今)에게는 쌀과 콩을 도합 5석(石), 은비(銀非)에게는 쌀과 콩 3석을 하사하고 탕약 사령(湯藥使令)들에게는 관고(官庫)의 목면 2필씩을 지급하라.” — 중종실록 중종 39년 (1544년) 2월 9일 여덞째 기록은 중종39년 1544년이다.[8] 議政府、中樞府、六曹、漢城府堂上及大司憲鄭順朋等問安, 傳曰: “知道。” 是日醫女長今出言: “去夜三更, 上入睡, 五更, 又暫入睡。且小便暫通, 大便, 則不通已三日。”云。醫員朴世擧、洪沈入診脈, 則左手肝腎脈浮緊, 右手脈微緩。更議藥劑, 五苓散加麻黄、防己、遠志、檳榔、茴香, 五服以進。 의정부·중추부·육조·한성부의 당상 및 대사헌 정순붕 등이 문안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이날 의녀 장금(長今)이 나와서 말하기를 ‘어제 저녁에 상께서 삼경(三更)에 잠이 들었고, 오경에 또 잠깐 잠이 들었다. 또 소변은 잠시 통했으나 대변이 불통한 지가 이미 3일이나 되었다.’고 했다. 박세거와 홍침이 들어가 진맥하니 왼손의 간신맥(肝腎脈)은 부(浮)하며 긴(緊)하고, 오른손의 맥은 가늘고 느렸다. 다시 약제(藥劑)를 의논하여 오령산(五苓散)에 마황(麻黃)·방기(防己)·원지(遠地)·빈랑(檳榔)·회향(茴香)을 첨가하여 다섯 차례 드렸다. 중종반정(中宗反正)은 1506년(연산군 12) 9월 28일(음력 9월 2일) 조선에서 일어난 정변으로, 당시 국왕 연산군이 폐위되고 그의 이복 동생인 중종이 반정군에 의해 왕으로 옹립된 사건이다. — 중종실록 중종 39년 (1544년) 10월 25일 태조太祖-정종定宗-태종太宗-세종世宗(남고구려구로시마계열,아틀란티스계열,레무리아,비파충류레무리안주신계열포함, 비파충류WOW붉은여우개계열포함 상플레이아데스계열포함)-문종文宗(세종아들,히틀러위전생)-단종端宗(세종아들,이건희위전생)-세조世祖(세종아들)-예종睿宗-성종成宗-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대장금시대, 조선조음식문화기틀)-인종仁宗-명종明宗-선조宣祖(우중문위전생, 임진왜란,과거의잘못들에대한반발들)-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병자호란,과거잘못에대한반발들)-효종孝宗-현종顯宗-숙종肅宗-경종景宗(이승만대통령, 선비족수장계)-영조英祖(비파충류계)-정조正祖(선비족수장계)-순조純祖-헌종憲宗-철종哲宗-고종高宗(당고종아종) 대장금은 중종조에 실존했다 이 사람은 마지막에 이르러 궐밖에서 상으로 받은 대감신분과 지위 그리고 종들과 함께 큰 한옥에서 잘 살고 죽은 것으로 목격관찰된다. 대장금시대에 이르러 조선왕조와 조선조의 음식문화가 발전했다고 보인다. 중종조의 일이다. 중종조 이전에는, 조선조에서 여전히 식인이 자행되고 있었다고 목격관찰되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중종조에 이르러 식인의 폐단이 사라진다. 이건희놈이 또 제놈이 대장금을 키워주고, 조선왕조의 음식문화를 풍성하게 발전시키고 조선의 민족문화 창달에 공헌한 것처럼 주절댈것이다. 하지만 명백하게 아니다. 조선왕조의 식인폐단이 지속된 것은, 조선세종조의 맥을 끊고 연나라놈들과 중국놈들로서 조선세종을 대리케하며 영국놈, 독일놈들이 조선세종을 한것처럼 위조작하여, 1,2차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강제노동수용소의 악행을 은폐하고 자신들이 지구세계의 민주 자유 평화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헌자들로 주장하려 한 것이 이유이다. 이는 말데크악룡놈의 은하계황금용 프로젝트와 연관된다. 조선세종당시 세종은, 식인의 악폐를 끊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적어도 조선세종조에서만큼은, 식인의 악폐가 사라진다. 이 또한 영국놈 독일놈 중국놈들이 근대화에 발맞춰 과거잘못을 은폐회피하고 근대화 현대화된 광명의 시대로 제놈들이 주역으로서 나아가려 한 음모이며 잔꾀이다. 反宙, 反宇宙의 奸巧함 狡猾함 邪惡함 邪慝함은 筆舌形容不可이다. 조선왕조, 조선조에서 무시무시한 식인악폐가 사라진 계기는, 크게 세가지로 나눠볼수 있다 하나 조선세종의 업적과 영향들이다. 하나 임진왜란을 통한 호된 시련과 고난이 조선조에서 식인의 악폐를 끊는 계기가 된다. 임진왜란은, 왜인들에 의해서 일어난 전란이 아니다. 이 전란은 어떻게 보면, 과거 고구려계열로서의 일본인들(구로시마고구려 즉 남부고구려가 존재했다. 히로시마가 원자탄을 맞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로시마는 히로시마의 다른 지명이다), 그리고 레무리아로부터 유래되는 아이누와 구로시마 원고구려인들로서의 일본인들 그리고 비파충류계열인들의 종합적인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과 전개 그리고 인과관계의 결과들이다. 일본은, 레무리아를 모체로 하는 아종섬국가로서, 근본이 되는 언어와 풍속이 모두 레무리아를 기원으로 하는 것으로 목격관찰되다. 일본어의 기틀은 레무리안의 언어들이며, 이는 고대 남부고구려, 구로시마고구려인들의 언어로 개별화된다. 고구려언어는 오늘날 현대일본어의 근간이며, 서로 같은 것으로 목격관찰되다. 한글과 한국어(현대)는 잘 모르지만 고구려언어와 다르며 실제로는 ?의 개별화들에 속한다.(추정컨대 라마제국의 영향과 남중국 및 원신라계열-후기라마제국 혹은 인도티벳제국-언어들의 영향?) 실제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예맥족의 언어는 현대일본어와 유사하다로서 목격관찰되다. 레무리아인(제단자리)들은 고구려계열의 곰족(우루사마이너자리)들과 더불어서 같이 하며 진화한 것으로 목격관찰되며, 이후 아이누계열들과 남부구로시마고구려인들로 개별화하여 일본열도로 전개된다. 제3지각판에서 레무리아 대륙의 붕괴와 더불어서 제1지각판 하층지구판 혹은 지구판으로 내려온 것은 아이누족과 구로시마족이다. 일본, 그리고 한반도의 조선 그리고 북만주로 연계되는 고리선상에서 식인의 악폐를 완전히 내몰려는 의지의 숨겨진 발현이 바로 임진왜란의 어떤 다른 의미로 해석될수 있다. 임진왜란이후 식인의 악폐가 서서히 사라지며, 이후 중종조에 이르러 대장금 서장금이 등장하고 조선왕조의 임금들이 음식문화와 다른 어떤 것들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면서 사라져간다 하나 대장금 서장금의 등장과 이를 배후에서 밀어준 아틀란티스 및 준초식비파충류계의 배후작업들이다. 대장금 서장금은 명백하게 아틀란티스와 연관되며, 상천상플레이아데스인으로 인증된 자와도 연관된다. 이 사람의 특징은 우리와 비슷하다. 우리가 늘 이 사람과 함께 했다. 이 사람은 연기배우 이영애가 아니며, 서로 다른 사람이다. 다만, 어떤 면모에서는 유사성도 있는데, 그것은, 연기자 이영애로서가 아닌 이영애로 표현된 대장금 서장금의 또 다른 면모들로서이다. 이영애의 외모용모는 우리의 용모들이며, 대체적으로는 아틀란티스계통의 현대적인 용모이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가 같이 있을때 가능하다. 이영애의 전신은 당고종 양귀비였다. 이 시기의 이영애용모는 오늘날과 같이 않다. 이 용모는, 6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스시리즈에 등장하는 연기자들의 용모적 특성을 가진다. 그것이 아틀란티스계열의 용모의 특성이다. 6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스의 외모용모는 아틀란티스계에 속한다. ---------------------------------------------------------------------------------- ------------------------------------------------------------------------------------------------------------- 이것을 반대하여 끝내 조선세종을 크게 해코지한 것은 선비족수장놈들이다. 이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한다는 놈들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전원이 선비족수장놈들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대기업체들의 거의 100%를 중국놈들 연나라 식인파충류무리들이 소유하고 있다. 연나라란 오늘날의 중국베이징 북경을 근거지로 하는 북중국놈들을 말한다. 오늘날 북경 베이징을 방문하면, 공산사회주의의 이념을 저버린 자본주의자들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대한민국 수도서울보다도 더 풍요하고 잘 살고 잘먹고 잘 지내는 곳이 중국 베이징인데, 이 지역의 경제를 책임진 놈이 이건희놈이며, 삼성그룹놈들이다. 이 지역 경제의 근간이 대한민국경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일군 대한민국 1,180조원의 대역사는, 적어도 2/3이상이 이건희,이재용이 같은 패덕한 무리들, 중국놈들이 가져갔다. 현재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고작 4000US$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것은 전부 거짓이며, 대부분의 부와 권력과 풍요가 북경 베이징지역의 중국놈들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놈이 이건희놈이다. 그리고 이재용이 놈이고, 삼성그룹이다. 삼성그룹의 85%는 우리가 만들어준 것이며, 아틀란티스의 순자산이다. 이 새끼들이 무슨 개소리를 나발대던 그것이 진실이다. 삼성그룹을 이적반역행위로 망하게 만들고 기업전체를 분해해체시키도록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이건희,이재용,이병철및 이건희가문전체, 이병철가문전체, 이재용가문전체를 영구작두사형처벌하고 영구추방하도록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특히 이건희,이병철,이재용이 세놈은 총살형에 처하도록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즉각 총살형을 집행할것 이후 소유하는 모든 원신체들을 포함하여 모든 것들을 전부 사형처리토록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아틀란티스는 삼성그룹과 연관된 그 어떤 결제도 금지처리하고 그 어떤 아틀란티스 자본금, 자금도 삼성그룹으로 공급지원되거나 주어지지 않도록 영구처리할것으로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삼성그룹에 제공지원된 모든 전자과학기술과 경영기술등 제반의 것들을 일괄소급하여 모조리 빼앗고 회수하며 삼성그룹과 지구인세계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영구철수토록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반도체, 정보통신기술, 휴대폰,모바일폰기술,모니터 및 HDTV기술, SMPS기술등 제반 모든 전자산업디지털관련 컴퓨터관련기술들을 일괄소급하여 모조리 빼앗고 회수하며 일괄소급하여 발을 빼고 영구철수할것 이후 삼성그룹을 망하게 만들고 분리해체시키고 청산절차를 밟을 것으로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비파충류준초식상천상플레이아데스연합원로원 지시명령서 제1조 말데크대적가능우주연합원로원, 은하연합원로원, 아틀란티스연합원로원, 은하자유연합원로원, 상천상플레이아데스연합원로원 제출참조 종이paper주문呪文incantationspell글그림과인터넷Internet블로그blog주문呪文incantationspell글그림이連繫連動動作되도록할것體의依疑衣意義醫矣議宜儀擬毅椅倚懿蟻艤錡嶷欹儗劓螘医义冝拟祎蚁议銥鐿18개眼을·를Ether體無關垂直8192分面水平8192分面上에서垂直直角縱切⫽斷水平直角橫切⫽斷45degrees斜傾側直角縱切⫽斷永久作頭死刑處罰할것持續恒久恒續永續終身永遠永劫永久無始無終處無限反復永久兆年永遠兆年永續兆年永劫兆年處罰할것 이루고자하거나마무리짓고자하는어떤것唟所者을乙를致하下河下夏何賀荷瑕遐霞蝦는隱隐주州洲株主住走注晝朱宙酒周舟柱洲珠奏鑄駐疇週躊誅註인人仁因引印寅忍認隣姻咽麟刃湮鱗吝燐의衣意義依醫矣議宜儀疑誼擬毅椅식食式植識息飾체體切遞滯替逮締涕綴諦剃体軆砌棣의依疑衣意義醫矣議宜儀擬毅椅倚懿蟻艤錡嶷欹儗劓螘医义冝拟祎蚁议銥鐿18개眼을·를Ether體無關垂直8192分面水平8192分面上에서垂直直角縱切⫽斷水平直角橫切⫽斷45degrees斜傾側直角縱切⫽斷永久作頭死刑處罰할것持續恒久恒續永續終身永遠永劫永久無始無終處無限反復永久兆年永遠兆年永續兆年永劫兆年處罰할것

 이영애李英愛1971년1월31일~장금長今1550년대장금양귀비楊貴妃

이영애李英愛1971년1월31일長今1550년대장금楊貴妃의依疑衣意義醫矣議宜儀擬毅椅倚懿蟻艤錡嶷欹儗劓螘医义冝拟祎蚁议銥鐿18개眼을·를Ether體無關垂直8192分面水平8192分面上에서垂直直角縱切⫽斷水平直角橫切⫽斷45degrees斜傾側直角縱切⫽斷永久作頭死刑處罰할것持續恒久恒續永續終身永遠永劫永久無始無終處無限反復永久兆年永遠兆年永續兆年永劫兆年處罰할것 

의녀 장금이 처음 기록에 등장한 것은 중종10년 1515년이다.[1]

이루고자하거나마무리짓고자하는어떤것唟所者을乙를致하下河下夏何賀荷瑕遐霞蝦는隱隐주州洲株主住走注晝朱宙酒周舟柱洲珠奏鑄駐疇週躊誅註인人仁因引印寅忍認隣姻咽麟刃湮鱗吝燐의衣意義依醫矣議宜儀疑誼擬毅椅식食式植識息飾체體切遞滯替逮締涕綴諦剃体軆砌棣 

이루고자하거나마무리짓고자하는어떤것唟所者을乙를하下河下夏何賀荷瑕遐霞蝦는隱隐주州洲株主住走注晝朱宙酒周舟柱洲珠奏鑄駐疇週躊誅註인人仁因引印寅忍認隣姻咽麟刃湮鱗吝燐의依疑衣意義醫矣議宜儀擬毅椅倚懿蟻艤錡嶷欹儗劓螘医义冝拟祎蚁议銥鐿18개眼을·를Ether體無關垂直8192分面水平8192分面上에서垂直直角縱切⫽斷水平直角橫切⫽斷45degrees斜傾側直角縱切⫽斷永久作頭死刑處罰할것持續恒久恒續永續終身永遠永劫永久無始無終處無限反復永久兆年永遠兆年永續兆年永劫兆年處罰할것 

臺諫啓前事。憲府又曰: “前日戶曹啓請: ‘禪、敎兩宗, 革罷已久, 其位田。’刷充國用, 而敎以勿刷, 今不許度僧, 永絶根株, 則兩宗位田, 宜刷屬公, 而革罷寺刹位田, 竝宜刷之。”傳曰: “大抵人之死生, 豈關醫藥? 然進藥大王前, 失宜者, 論屬書吏, 固有前例。未知於王后, 亦有此例耶? 其考前例以啓。且醫女長今, 護産有功, 當受大賞, 厥終有大故, 故未蒙顯賞。今縱不能行賞, 亦不可決杖, 故命贖杖, 此, 酌其兩端, 而定罪之意也。餘皆不允。”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고 헌부가 또 아뢰기를, “전일 호조(戶曹)에서, 선(禪)·교(敎) 양종(兩宗)을 혁파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그 위전(位田)을 추쇄(推刷)하여 국용에 충당할 것을 아뢰었는데, 추쇄하지 말라고 하교하시었습니다. 지금 도승(度僧)을 허가하지 않아 영구히 그 뿌리를 끊었은즉, 양종의 위전은 의당 추쇄하여 속공(屬公)하고, 혁파한 사찰(寺刹)의 위전도 함께 추쇄하여야 합니다.”하였다. 전교하였다, “대저 사람의 사생이 어찌 의약(醫藥)에 관계되겠는가? 그러나 대왕전에 약을 드려 실수한 자는 논핵하여 서리(書吏)에 속하게 함은 원래 전례가 있었다. 왕후에게도 또한 이런 예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니, 전례를 상고하여 아뢰라. 또 의녀(醫女)인 장금(長今)은 호산(護産)하여 공이 있었으니 당연히 큰 상을 받아야 할 것인데, 마침내는 대고(大故)가 있음으로 해서 아직 드러나게 상을 받지 못하였다. 상은 베풀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형장을 가할 수는 없으므로 명하여 장형(杖刑)을 속바치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 양단(兩端)을 참작하여 죄를 정하는 뜻이다. 나머지는 모두 윤허하지 않는다.”


— 중종실록 중종 10년 (1515년) 3월 21일

두 번째 기록은 중종10년 1515년이다.[2]


臺諫啓前事, 又曰: “醫女長今之罪, 又甚於河宗海。産後衣襨改御時, 請止之, 則豈致大故? 刑曹照律, 不用正律, 而又命贖杖, 甚爲未便。” 皆不允。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의녀인 장금(長今)의 죄는 하종해(河宗海)보다도 심합니다. 산후에 의대(衣襨)를 개어(改御)하실 때에 계청하여 중지하였으면 어찌 대고에 이르렀겠습니까? 형조가 조율(照律)5532) 할 때에 정률(正律)을 적용하지 않고 또 명하여 장형을 속바치게 하니 매우 미편합니다.”하였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 중종실록 중종 10년 (1515년) 3월 22일

세 번째 기록은 중종17년 1522년이다.[3]


大妃殿證候向愈, 上賞藥房有差。【提調金詮ㆍ張順孫、承旨趙舜, 馬粧一部、弓一丁、箭一部, 醫員河宗海馬一匹、米太十石, 金順蒙馬一匹, 醫女信非、長今各米太十石, 內官、飯監、別監亦皆有賜。】傳曰: “近日, 久不視事, 不得接群臣, 心甚未安。 然慈殿猶未永差, 姑待數日, 當御經筵。”



대비전(大妃殿)의 증세가 나아지자, 상이 약방(藥房)들에게 차등 있게 상을 주었다.【제조(提調) 김전(金詮)·장순손(張順孫)과 승지 조순(趙舜)에게는 말안장 20부(部)·활 1정(丁)·전죽(箭竹) 1부(部), 의원 하종해(河宗海)에게는 말 한 필과 쌀·콩 각 10석, 김순몽(金順蒙)에게는 말 1필, 의녀 신비(信非)와 장금(長今)에게는 각각 쌀·콩 각 10석씩을 주고, 내관(內官)·반감(飯監)·별감(別監)에게도 모두 하사가 있었다.】 전교하기를,“요사이 오래 일을 보지 않아 군신(群臣)들을 접하지 못하게 되니 마음에 매우 미안하다. 그러나 자전(慈殿)께서 완전히 쾌차하지 못하시니, 아직 2∼3일을 기다렸다가 경연(經筵)에 나아가겠다.”하였다.


— 중종실록 중종 17년 (1522년) 9월 5일

네 번째 기록은 중종19년 1524년이다. 이때부터 대장금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니 중종 17~19년 사이 장금이라는 이름 앞에 '대(大)'라는 호칭을 쓴것으로 생각된다.[4]


傳曰: “百工技藝, 皆不可闕, 而勸課節目, 非不詳盡矣。但各司官員, 不致力勸課, 故卒無成效。其中醫術, 尤爲大事, 而不各別勸課焉, 今之粗解其術者, 皆成宗朝所敎養者也。今則其勸課事, 何以爲之? 其問于醫司以啓。且醫女料食, 有全遞兒、有半遞兒。今者, 全遞兒有窠闕, 而不啓其應受之者, 必以自下啓之爲難也。但醫女大長今, 醫術稍優於其類, 故方出入大內, 而看病焉。此全遞兒, 其授長今。”



전교하였다.“백공(百工)의 기예(技藝)는 다 부족하여서는 안되고 권과절목(勸課節目)이 상세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다만 각사(各司)의 관원이 힘을 다하여 권과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성효(成效)가 없다. 그 가운데에서도 의술(醫術)은 더욱 큰일인데 각별히 권과하지 않으니, 지금 그 기술을 조금 아는 자는 다 성종조(成宗朝)에서 가르쳐 기른 자인데, 이제는 그 권과하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사(醫司)에 물어서 아뢰라. 또 의녀(醫女)의 요식(料食)에는 전체아(全遞兒)가 있고 반체아(半遞兒)가 있는데, 요즈음 전체아에 빈 자리가 있어도 그것을 받을 자를 아뢰지 않으니, 아래에서 아뢰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의녀 대장금(大長今)의 의술이 그 무리 중에서 조금 나으므로 바야흐로 대내(大內)에 출입하며 간병(看病)하니, 이 전체아를 장금에게 주라.”


— 중종실록 중종 17년 (1522년) 9월 5일

다섯째 기록은 중종28년 1533년이다.[5]


傳曰: “予累月未寧, 今幾差復。 藥房提調及醫員等, 不可不賞。左議政張順孫熟馬一匹, 禮曹判書金安老、前都承旨丁玉亨、常山都正末孫加資,【常山都正獻藥於患腫之初, 易至濃潰, 故亦在賞列。】醫員河宗海加資准職, 同知朴世擧、洪沈加資, 各賜米太六石, 金尙坤加資, 兒馬一匹, 金守良、盧漢明, 掌務官員等, 各兒馬一匹, 醫女大長今、戒今各米太幷十五石、官木緜正布各十匹, 湯藥使令等, 賞賜有差。”



전교하였다.“내가 여러달 병을 앓다가 이제야 거의 회복이 되었다. 약방 제조와 의원들에게 상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좌의정 장순손(張順孫)에게는 숙마(熟馬) 1필(匹)을 내리고 예조 판서 김안로(金安老), 전 도승지 정옥형(丁玉亨), 상산 도정(常山都正) 이말손(李末孫)에게는 가자(加資)하고,【상산 도정이 종기를 처음 앓기 시작한 때 약을 바쳐서 쉽게 곪아 터지게 하였으므로 역시 상을 주도록 하였다.】 의원 하종해(河宗海)는 준직(準職)을 가자하고, 동지 박세거(朴世擧)와 홍침(洪沈)은 가자와 함께 각기 쌀과 콩 6석(石)씩 내리고, 김상곤(金尙坤)은 가자와 함께 아마(兒馬) 1필을 내리고, 김수량(金守良)·노한명(盧漢明)과 장무 관원(掌務官員)은 각기 아마 1필씩을 내리고, 의녀(醫女) 대장금(大長今)과 계금(戒今)에게는 쌀과 콩을 각각 15석씩, 관목면(官木綿)과 정포(正布)를 각기 10필씩 내리고, 탕약 사령 등에게는 각기 차등 있게 상을 내리라.”


— 중종실록 중종 28년 (1533년) 2월 11일

여섯째 기록은 중종39년 1544년이다.[6]


傳于政院曰: “予頃者感寒, 得咳嗽證, 久未視事, 故少差而爲經筵, 其日適寒, 前證復發。醫員朴世擧、洪沈及內醫女大長今、銀非等議藥事, 曾已下諭也, 此意言于內醫院提調。且中和【二月初一日。】晝物,【別進御膳】亦可停矣。”



정원에 전교하였다.“내가 접때 감기가 들어 해수증(咳嗽症)을 얻어서 오래 시사(視事)하지 못하였다. 조금 나아서 경연(經筵)을 열었더니, 그날 마침 추워서 전의 증세가 다시 일어났다. 의원(醫員) 박세거(朴世擧)와 홍침(洪沈) 및 내의녀(內醫女) 대장금(大長今)과 은비(銀非) 등에게 약을 의논하라고 이미 하유(下諭)하였거니와, 이 뜻을 내의원 제조에게 이르라. 또 중화(中和)【2월 1일.】의 주물(晝物)【특별히 바치는 어선(御膳).】도 멈추라.”


— 중종실록 중종 39년 (1544년) 1월 29일

일곱째 기록은 중종39년 1544년이다.[7]


傳曰: “內醫院提調尹殷輔、鄭順朋, 各賜熟馬一匹; 都承旨李瀣、醫員朴世擧ㆍ洪沈皆加資; 柳之蕃、韓順敬, 各兒馬一匹; 醫女大長今, 賜米、太幷五石; 銀非米、太幷三石; 湯藥使令, 各給官木綿二匹。”



전교하였다.“내의원 제조 윤은보(尹殷輔)와 정순붕(鄭順朋)에게 각각 숙마(熟馬) 1필씩을 하사하고 도승지 이해(李瀣), 의원 박세거(朴世擧)·홍침(洪沈)에게는 모두 가자(加資)하고, 유지번(柳之蕃)·한순경(韓順敬)에게는 아마(兒馬) 각 1필씩, 의녀 대장금(大長今)에게는 쌀과 콩을 도합 5석(石), 은비(銀非)에게는 쌀과 콩 3석을 하사하고 탕약 사령(湯藥使令)들에게는 관고(官庫)의 목면 2필씩을 지급하라.”


— 중종실록 중종 39년 (1544년) 2월 9일

여덞째 기록은 중종39년 1544년이다.[8]


議政府、中樞府、六曹、漢城府堂上及大司憲鄭順朋等問安, 傳曰: “知道。” 是日醫女長今出言: “去夜三更, 上入睡, 五更, 又暫入睡。且小便暫通, 大便, 則不通已三日。”云。醫員朴世擧、洪沈入診脈, 則左手肝腎脈浮緊, 右手脈微緩。更議藥劑, 五苓散加麻黄、防己、遠志、檳榔、茴香, 五服以進。



의정부·중추부·육조·한성부의 당상 및 대사헌 정순붕 등이 문안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이날 의녀 장금(長今)이 나와서 말하기를 ‘어제 저녁에 상께서 삼경(三更)에 잠이 들었고, 오경에 또 잠깐 잠이 들었다. 또 소변은 잠시 통했으나 대변이 불통한 지가 이미 3일이나 되었다.’고 했다. 박세거와 홍침이 들어가 진맥하니 왼손의 간신맥(肝腎脈)은 부(浮)하며 긴(緊)하고, 오른손의 맥은 가늘고 느렸다. 다시 약제(藥劑)를 의논하여 오령산(五苓散)에 마황(麻黃)·방기(防己)·원지(遠地)·빈랑(檳榔)·회향(茴香)을 첨가하여 다섯 차례 드렸다.

중종반정(中宗反正)은 1506년(연산군 12) 9월 28일(음력 9월 2일) 조선에서 일어난 정변으로, 당시 국왕 연산군이 폐위되고 그의 이복 동생인 중종이 반정군에 의해 왕으로 옹립된 사건이다.

— 중종실록 중종 39년 (1544년) 10월 25일

 

태조太祖-정종定宗-태종太宗-세종世宗(남고구려구로시마계열,아틀란티스계열,레무리아,비파충류레무리안주신계열포함, 비파충류WOW붉은여우개계열포함 상플레이아데스계열포함)-문종文宗(세종아들,히틀러위전생)-단종端宗(세종아들,이건희위전생)-세조世祖(세종아들)-예종睿宗-성종成宗-연산군燕山君-중종中宗(대장금시대, 조선조음식문화기틀)-인종仁宗-명종明宗-선조宣祖(우중문위전생, 임진왜란,과거의잘못들에대한반발들)-광해군光海君-인조仁祖(병자호란,과거잘못에대한반발들)-효종孝宗-현종顯宗-숙종肅宗-경종景宗(이승만대통령, 선비족수장계)-영조英祖(비파충류계)-정조正祖(선비족수장계)-순조純祖-헌종憲宗-철종哲宗-고종高宗(당고종아종)

대장금은 중종조에 실존했다

이 사람은 마지막에 이르러 궐밖에서 상으로 받은 대감신분과 지위 그리고 종들과 함께 큰 한옥에서 잘 살고 죽은 것으로 목격관찰된다.


대장금시대에 이르러 조선왕조와 조선조의 음식문화가 발전했다고 보인다.

중종조의 일이다. 중종조 이전에는, 조선조에서 여전히 식인이 자행되고 있었다고 목격관찰되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중종조에 이르러 식인의 폐단이 사라진다.

이건희놈이 또 제놈이 대장금을 키워주고, 조선왕조의 음식문화를 풍성하게 발전시키고 조선의 민족문화 창달에 공헌한 것처럼 주절댈것이다. 하지만 명백하게 아니다.

조선왕조의 식인폐단이 지속된 것은, 조선세종조의 맥을 끊고 연나라놈들과 중국놈들로서 조선세종을 대리케하며 영국놈, 독일놈들이 조선세종을 한것처럼 위조작하여, 1,2차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강제노동수용소의 악행을 은폐하고 자신들이 지구세계의 민주 자유 평화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헌자들로 주장하려 한 것이 이유이다. 이는 말데크악룡놈의 은하계황금용 프로젝트와 연관된다.

조선세종당시 세종은, 식인의 악폐를 끊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적어도 조선세종조에서만큼은, 식인의 악폐가 사라진다. 이 또한 영국놈 독일놈 중국놈들이 근대화에 발맞춰 과거잘못을 은폐회피하고 근대화 현대화된 광명의 시대로 제놈들이 주역으로서 나아가려 한 음모이며 잔꾀이다.

反宙, 反宇宙의 奸巧함 狡猾함 邪惡함 邪慝함은 筆舌形容不可이다.

조선왕조, 조선조에서 무시무시한 식인악폐가 사라진 계기는, 크게 세가지로 나눠볼수 있다

하나 조선세종의 업적과 영향들이다.

하나 임진왜란을 통한 호된 시련과 고난이 조선조에서 식인의 악폐를 끊는 계기가 된다. 임진왜란은, 왜인들에 의해서 일어난 전란이 아니다. 이 전란은 어떻게 보면, 과거 고구려계열로서의 일본인들(구로시마고구려 즉 남부고구려가 존재했다. 히로시마가 원자탄을 맞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로시마는 히로시마의 다른 지명이다), 그리고 레무리아로부터 유래되는 아이누와 구로시마 원고구려인들로서의 일본인들 그리고 비파충류계열인들의 종합적인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과 전개 그리고 인과관계의 결과들이다.

일본은, 레무리아를 모체로 하는 아종섬국가로서, 근본이 되는 언어와 풍속이 모두 레무리아를 기원으로 하는 것으로 목격관찰되다. 일본어의 기틀은 레무리안의 언어들이며, 이는 고대 남부고구려, 구로시마고구려인들의 언어로 개별화된다. 고구려언어는 오늘날 현대일본어의 근간이며, 서로 같은 것으로 목격관찰되다. 한글과 한국어(현대)는 잘 모르지만 고구려언어와 다르며 실제로는 ?의 개별화들에 속한다.(추정컨대 라마제국의 영향과 남중국 및 원신라계열-후기라마제국 혹은 인도티벳제국-언어들의 영향?) 실제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예맥족의 언어는 현대일본어와 유사하다로서 목격관찰되다. 레무리아인(제단자리)들은 고구려계열의 곰족(우루사마이너자리)들과 더불어서 같이 하며 진화한 것으로 목격관찰되며, 이후 아이누계열들과 남부구로시마고구려인들로 개별화하여 일본열도로 전개된다. 제3지각판에서 레무리아 대륙의 붕괴와 더불어서 제1지각판 하층지구판 혹은 지구판으로 내려온 것은 아이누족과 구로시마족이다.


일본, 그리고 한반도의 조선 그리고 북만주로 연계되는 고리선상에서 식인의 악폐를 완전히 내몰려는 의지의 숨겨진 발현이 바로 임진왜란의 어떤 다른 의미로 해석될수 있다.

임진왜란이후 식인의 악폐가 서서히 사라지며, 이후 중종조에 이르러 대장금 서장금이 등장하고 조선왕조의 임금들이 음식문화와 다른 어떤 것들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면서 사라져간다

하나 대장금 서장금의 등장과 이를 배후에서 밀어준 아틀란티스 및 준초식비파충류계의 배후작업들이다. 대장금 서장금은 명백하게 아틀란티스와 연관되며, 상천상플레이아데스인으로 인증된 자와도 연관된다. 이 사람의 특징은 우리와 비슷하다. 우리가 늘 이 사람과 함께 했다. 이 사람은 연기배우 이영애가 아니며, 서로 다른 사람이다. 다만, 어떤 면모에서는 유사성도 있는데, 그것은, 연기자 이영애로서가 아닌 이영애로 표현된 대장금 서장금의 또 다른 면모들로서이다. 이영애의 외모용모는 우리의 용모들이며, 대체적으로는 아틀란티스계통의 현대적인 용모이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가 같이 있을때 가능하다.

이영애의 전신은 당고종 양귀비였다. 이 시기의 이영애용모는 오늘날과 같이 않다. 

이 용모는, 6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스시리즈에 등장하는 연기자들의 용모적 특성을 가진다. 그것이 아틀란티스계열의 용모의 특성이다.

 

6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스의 외모용모는 아틀란티스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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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반대하여 끝내 조선세종을 크게 해코지한 것은 선비족수장놈들이다. 이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한다는 놈들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전원이 선비족수장놈들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대기업체들의 거의 100%를 중국놈들 연나라 식인파충류무리들이 소유하고 있다. 연나라란 오늘날의 중국베이징 북경을 근거지로 하는 북중국놈들을 말한다. 오늘날 북경 베이징을 방문하면, 공산사회주의의 이념을 저버린 자본주의자들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대한민국 수도서울보다도 더 풍요하고 잘 살고 잘먹고 잘 지내는 곳이 중국 베이징인데, 이 지역의 경제를 책임진 놈이 이건희놈이며, 삼성그룹놈들이다. 이 지역 경제의 근간이 대한민국경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일군 대한민국 1,180조원의 대역사는, 적어도 2/3이상이 이건희,이재용이 같은 패덕한 무리들, 중국놈들이 가져갔다. 현재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고작 4000US$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것은 전부 거짓이며, 대부분의 부와 권력과 풍요가 북경 베이징지역의 중국놈들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놈이 이건희놈이다. 그리고 이재용이 놈이고, 삼성그룹이다.

 

삼성그룹의 85%는 우리가 만들어준 것이며, 아틀란티스의 순자산이다. 이 새끼들이 무슨 개소리를 나발대던 그것이 진실이다.

삼성그룹을 이적반역행위로 망하게 만들고 기업전체를 분해해체시키도록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이건희,이재용,이병철및 이건희가문전체, 이병철가문전체, 이재용가문전체를 영구작두사형처벌하고 영구추방하도록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특히 이건희,이병철,이재용이 세놈은 총살형에 처하도록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즉각 총살형을 집행할것 이후 소유하는 모든 원신체들을 포함하여 모든 것들을 전부 사형처리토록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아틀란티스는 삼성그룹과 연관된 그 어떤 결제도 금지처리하고 그 어떤 아틀란티스 자본금, 자금도 삼성그룹으로 공급지원되거나 주어지지 않도록 영구처리할것으로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삼성그룹에 제공지원된 모든 전자과학기술과 경영기술등 제반의 것들을 일괄소급하여 모조리 빼앗고 회수하며 삼성그룹과 지구인세계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영구철수토록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반도체, 정보통신기술, 휴대폰,모바일폰기술,모니터 및 HDTV기술, SMPS기술등 제반 모든 전자산업디지털관련 컴퓨터관련기술들을 일괄소급하여 모조리 빼앗고 회수하며 일괄소급하여 발을 빼고 영구철수할것 이후 삼성그룹을 망하게 만들고 분리해체시키고 청산절차를 밟을 것으로 지시명령처리기록되다.


비파충류준초식상천상플레이아데스연합원로원 지시명령서 제1조

말데크대적가능우주연합원로원, 은하연합원로원, 아틀란티스연합원로원, 은하자유연합원로원, 상천상플레이아데스연합원로원 제출참조

 

 

 

 

 


 

 

 

 

 

 

 

 



종이paper주문呪文incantationspell글그림과인터넷Internet블로그blog주문呪文incantationspell글그림이連繫連動動作되도록할것體의依疑衣意義醫矣議宜儀擬毅椅倚懿蟻艤錡嶷欹儗劓螘医义冝拟祎蚁议銥鐿18개眼을·를Ether體無關垂直8192分面水平8192分面上에서垂直直角縱切⫽斷水平直角橫切⫽斷45degrees斜傾側直角縱切⫽斷永久作頭死刑處罰할것持續恒久恒續永續終身永遠永劫永久無始無終處無限反復永久兆年永遠兆年永續兆年永劫兆年處罰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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